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본다. 아니 최소한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다음 등의 포탈을 들어가서 본다.
온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이 작은 화면 안에 전달된다.
지진, 전쟁, 기근, 북핵 위협, 정치... 좋은 소식은 찾기 힘들고 대부분 먼나라 이웃나라 혹은 내 나라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소식들이다.
올해 경제 전망은 어쩌고, 부동산 가격은 어쩌고 거품을 어쩌고.. 이런 일들로 점철된다.
보면 볼수록 걱정과 불안이 생긴다.
사실 대부분은 나랑 직접 관련있는 일들이 아니다.
IMF때 온 나라가 난리가 났고,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그렇다 고통스러웠지만 더 고통스러운 것이 있다. 그것은 두려움이다.
실체는 없지만, 정보로 다가오는 두려움,
저 너머에 있는 이웃과 이웃 나라들의 소식이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올해 경기는 침체될 것이고 IMF보다 큰 경제위기가 올 것이다.
막상 그런 위기가 온다고해서 굶어죽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필요이상으로 두려워한다.
그것은 실체 없는 정보가 주는 두려움이다.
사실 과거는 우리보다 훨씬 더 위험한 사회였다.
자연재해, 취약한 치안, 전쟁 등이 그것이다.
오늘날 사회는 훨씬 더 안정하고 제도화되었지만
항상 북핵이나 정치 리스크, 이웃 나라의 경제 몰락과 주가의 변동에 두려워한다.
이런 두려움들은 우리를 스스로 갉아먹고 우리를 힘들게 한다.
우리를 정작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이다.
그것이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돌이켜보면 스마트폰과 초고속 통신으로 무장된 현대인들에게 돌아온
최신 현대 문명이 준 병이라고도 하겠다.
나는 이런 불안감에서 나를 가끔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금식을 한다.
밥을 안먹는 금식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꺼 버리고, 아니면 에어플레인 모드로 바꾸든지
아니면 집에서는 와이파이를 꺼 버린다.
TV도 전원을 뽑아버린다.
이제 내가 능동적으로 옴직이지 않으면 미디어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단지 FM라디오의 앵앵하는 음악소리만 조그맣케 틀어놓고 명상을 즐긴다.
기도하기도 한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진다.
마음의 양식은 지식이며, 몸의 양식은 밥이다. 그러나 과식하면 비만이 오고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음식을 줄이는 것처럼
우리는 마음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는 정보를 줄일 필요가 있다.
이것이 21세기 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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